Thursday, September 24, 2026

AI와 로봇이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의 역설

사라지는 소비자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비용을 줄여왔다. 그리고 기업에서 가장 큰 비용 가운데 하나는 언제나 사람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는 사람의 육체노동을 대신했고, 컴퓨터는 반복적인 사무업무를 대신했다. 이제 AI와 로봇은 그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사람을 대신하기 시작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100명이 하던 일을 AI와 로봇을 이용해 10명이 할 수 있다면 인건비는 줄어들고 생산성은 높아진다.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경쟁기업이 그렇게 한다면 다른 기업 역시 살아남기 위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상한 역설이 존재한다.

기업이 없애고 있는 그 사람들이 바로 기업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던 소비자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동차를 사고, 집을 사고, 음식을 먹고, 여행을 하고, 옷을 사고, 각종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렇게 사용된 돈은 다시 기업의 매출이 된다.

그런데 기업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계속 줄이면 어떻게 될까?

생산은 늘어나는데 임금을 받는 사람은 줄어든다.
기업은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지만,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구매력은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사람을 없앴는데, 결국 그 돈을 벌게 해줄 사람까지 없애는 것이다.

과거에도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우려는 항상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기계가 일자리를 없애면 사람들은 기계를 만드는 일을 하면 된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바뀌었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면 AI와 로봇 관련 일을 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실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기존의 일을 하던 사람 가운데 과연 몇 퍼센트가 AI 개발자나 로봇 엔지니어 같은 고도의 기술직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그러한 직업은 누구나 교육만 받으면 할 수 있는 일일까?
나이와 교육수준, 능력의 차이를 넘어 수많은 사람이 단기간에 하이테크 직업으로 이동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설령 모두가 그런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을 고용할 일자리가 존재하는가?

1,000명의 노동자를 대신하기 위해 만든 자동화 시스템을 관리하는 데 다시 1,000명이 필요하다면 애초에 자동화할 경제적 이유가 없다. 1,000명이 하던 일을 50명이나 100명이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자동화를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직업이 생긴다는 사실과 사라진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AI는 과거의 기계화와도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기계는 주로 사람의 육체노동을 대신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육체노동에서 사무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는 사무직과 지식노동까지 직접 대체하기 시작했다.
회계, 번역, 디자인, 상담, 분석, 프로그래밍, 법률업무 등 과거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분야까지 자동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AI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직업으로 이동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그런 직업이 수억 명을 수용할 만큼 존재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앞으로의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가 없어지는가’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소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소득분배 과정에 참여했다.

노동 → 임금 → 소비 → 기업의 매출 → 다시 고용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 순환구조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경제에 참여했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규모로 대신한다면 이 연결고리에서 ‘노동 → 임금’이라는 부분이 약해질 수 있다. AI와 로봇은 쉬지 않고 생산한다. 생산성은 높아지고 사회 전체가 만들어내는 부 역시 커질 수 있다.

문제는 그 부가 어디로 가느냐이다.

AI와 로봇이 만들어낸 생산성의 대부분이 그것을 소유한 기업과 자본의 이익으로 집중되고,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사람들의 몫이 계속 줄어든다면 생산능력은 넘쳐나면서도 그것을 구매할 사람들의 구매력은 부족해지는 기묘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소득분배 문제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 문제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커질 수도 있다. 과거에는 분배가 불평등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다 같이 일해서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만 물을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의 노동 없이도 막대한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 그 부를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나누어 갖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기본소득이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고, 사회배당이나 노동시간 단축, 새로운 형태의 자본소유와 소득분배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 옳은지는 앞으로 사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는 피하기 어렵다.

기업은 이윤을 얻기 위해 존재하고, 이윤을 늘리기 위해 비용을 줄이려 한다. AI와 로봇은 인간의 노동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단이다.

그래서 각각의 기업이 자신의 입장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모든 기업이 동시에 같은 선택을 하면 사회 전체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사람을 줄인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어든다.
소득이 줄어들면 소비가 줄어든다.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의 상품을 살 사람이 줄어든다.
그리고 결국 기업이 벌어야 할 돈도 줄어든다.

어쩌면 이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가장 큰 자본주의의 역설인지도 모른다.

생산할 능력은 역사상 가장 풍부한데, 그것을 소비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부족한 사회.

AI 시대의 진짜 문제는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기계가 만들어낸 엄청난 부를 가지고도 인간이 계속 경제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더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Friday, January 23, 2026

 DPO(digitally priced-out )

구독의 시대, 우리는 왜 더 가난해졌는가

— digitally priced-out 세대에 대하여

나는 올해로 61세다.
내가 컴퓨터를 처음 배웠을 때는 컴퓨터 산업의 초창기였다.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법적·기술적 통제가 촘촘하지 않았고, 소프트웨어는 ‘구독’이 아니라 ‘소유’의 개념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정식이든 아니든, 값이 싸든 복제판이든 간에 프로그램을 직접 만져보고 기능을 익히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돈이 없더라도 시간을 들여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경제적 여건과 학습 기회가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던 시기였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오늘날 대부분의 핵심 소프트웨어는 구독 기반이다. 디자인 툴, 오피스 프로그램, 개발 도구, 심지어 학습용 소프트웨어까지 매달 비용을 지불해야 접근할 수 있다. 여기에 계정 인증, 클라우드 연동, DRM 같은 기술적 통제가 더해지면서 “공부용으로 잠깐 써본다”는 선택지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 구조에서 문제는 분명하다.
이제는 능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지불 능력이 학습 기회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 현상을 digital price-out이라고 부르고 싶다.

디지털 기술을 배우고 싶지만, 비용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 과거에는 불법 복제의 문제로 보였던 것이, 지금은 오히려 합법적인 구조 안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빈곤으로 바뀌었다.

아이러니한 점도 있다.
불법 복제는 줄었지만, 디지털 격차는 오히려 더 커졌다. 예전에는 가난해도 실력자는 나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실력이 있어도 접근 비용이 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나는 요즘 젊은 세대가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컴퓨터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배울 수 있는 창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세대는 더 많은 기술과 더 좋은 환경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핵심 도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이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불법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배우고, 누가 배제되는가에 대한 구조의 문제다.

우리는 정말로 공정한 디지털 사회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구독이라는 이름 아래 또 다른 장벽을 쌓고 있는가.

이 질문은 이제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구독한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쓴 글)

Rising subscription fees have created a new class of digitally priced-out users.

In the past, even people with little money could learn software through copies or cheap versions.
Today, strict control and subscription models have digitally priced-out many potential learners.

This is not piracy vs legality anymore — it’s about who gets to learn and who gets digitally priced-out.

Sunday, October 12, 2025

습관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오랜기간 동안 책을 멀리했다. 그러니 우선 활자가 눈에 안들어 오고 물론 생물학적으로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눈이 오래 머물지 못하고 쉬 책을 덮는다. 즐거움중 하나인 책을 손에서 오래 놓았다는 아쉬움도 있고 

"AI 에서는 오늘 쓰는 인공지능이 가장 뒤떨어진 인공지능이다"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원래 "환각"이라는 뜻인데, LLM 같은 인공지능이 사실이 아닌 내용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현상 -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논문이나 URL을 인용. 잘못된 수치나 연도를 자신있게 말함. "김치의 원산지는 일본이다" 같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단정적으로 설명.

감시자본주의 시대 - 조지오웰의 탐구주제를 확장한 개념으로 거대 기업들이 당과 빅 브라더를 '감각적이고 네트워크화된 컴퓨터 인프라로 대체한 빅 아더(other)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용이 무료라면 당신이 상품인 것이다" 라는 진부한 표현은 잊어라 당신은 상품이 아니라 유기된 코끼리의 사채일 뿐이다. ' 상품'은 당신의 삶에서 뜯어낸 잉여로부터 나온다.

AI가 정신적 질환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생성성 AI와 머쉰런닝 AI의 차이점확률 계산 중심(통계) → 신경망 활용(머신러닝/딥러닝) → 초거대 언어 모델(LLM)

일반적인 데이터량에선 하나의 특이점으로 발견된 데이터가 무수히 많은 데이터속에선 하나의 특징으로 분류될 수가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윈인을 파악할 수 있는 통계적 유효성을 갖는다. 이런걸 하는게 AI가 하는 일중 하나 아닌겠는가.


통계 시대 → 머신러닝/딥러닝 시대 → LLM 시대 → AGI

Saturday, October 04, 2025

 “Selling Time, Losing Life”
- 시간을 팔고 삶을 잃다 -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은 모든 것이 비싸다고 느낍니다.
시간을 주고 산 돈으로 물건을 사기 때문이죠.그래서 모든 것을 자신의 삶으로 지불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예를 들어, 제가 돈이 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돈을 '돈'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차를 사고 싶고, 시간도 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건 제 시간을 좀 써서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시간을 바꿉니다.그러면, 그 사람이 돈을 주죠.그런데 돈을 받으면 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가버렸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요. 영원히 사라진 거예요.

그러다가이 차를 보고 '이 돈으로 시간을 벌었으니,이 돈으로 이 물건들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차를 사려고 합니다. 이제 시간도 없고 돈도 없지만, 차는 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차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귀중한 자산을 한정된 자산과 맞바꾸고, 그 한정된 자산을 가치가 떨어지는 자산과 맞바꾸는 거죠. 그런데 왜 중개인을 통해 거래를 하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그랬거든요




2008년 10월 15일 



2025년 10월 4일








내가 살아가는 현재의 기술력











**리히텐베르크 패턴(Lichtenberg figure)**은
“절연체에 생긴 번개 모양의 전기 방전 흔적”으로, 전기, 예술, 과학을 잇는 자연의 프랙탈 예술이다.

Tuesday, March 25, 2025

 AI divided

과거 한국 사회에서는
영어가 계층을 나누는 도구였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더 나은 교육, 직업,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고,
'못하는 사람'은 그 문턱에서 좌절하곤 했죠.
이 현상은 흔히 English Divided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이제 영어보다 더 강력한 분기점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AI(인공지능) 입니다.


AI를 아는 者 vs 모르는 者

이제 누구는 ChatGPT로 보고서를 쓰고,
Midjourney로 디자인을 만들고,
코딩까지 AI로 자동화합니다.

반면, 누군가는
"AI가 뭔지도 모르겠고, 쓸 줄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관심’의 차이가 아니라,
생산성, 창의성, 경쟁력의 격차로 이어집니다.


AI를 다루는 者 vs AI에 종속되는 者

앞으로는 AI를 ‘도구’로 다루는 사람이
아이디어를 더 빨리 실현하고,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반면, AI가 결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받거나,
AI에게 업무를 빼앗기는 사람도 생겨날 것입니다.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권력과 통제의 수단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교육부터 직업까지 벌어지는 격차

일부 학교와 고소득층 자녀는
이미 AI로 공부하고, 코딩하고, 발표 자료를 만듭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AI를 쓸 기회조차 없거나, 두려움에 접근하지 못합니다.

이 격차는 단순한 디지털 격차를 넘어
생각하고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로 번지고 있습니다.


AI가 일자리를 나눈다

앞으로의 직업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 AI를 활용하고 통제하는 사람

  • AI에 의해 대체되는 사람

AI를 잘 다루는 사람은 창의적이고 고부가가치 업무를 맡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점점 단순 업무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AI 접근권 자체가 특권이 된다

GPT-4, Claude, Sora 같은 고성능 AI는
유료이거나 좋은 장비, 빠른 인터넷이 필요합니다.
결국, AI를 쓸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계층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결론: AI 격차는 곧 미래 격차다

AI는 위협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르고 지나치면, 누군가의 기회를 빼앗기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묻고 있어야 합니다.
“나는 AI를 쓰고 있는가, 아니면 AI에게 쓰이고 있는가?”


📌 AI Divided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위 블로그의 글은 ChatGPT로 작성된 것이면 일러스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공지능이 4개월 전과 너무 다른 속도로 발전해 사용하면서도 매우 놀라고 
있다. 코딩또한 매우 매끄럽게 작성하는거 같고, 얼마전 이제는 굳이 영어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전문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그 시간을 다른 창의성에 써야 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변화속도에 두렵기도, 편리함과 전문성에 더욱 기대가 된다.    -  곰팽이 -

Thursday, February 13, 2025


기업이란..

이윤이라는 두바퀴를 가진 자전거와 같다.

이윤이라는 바퀴가 없으면 구르지 않기 때문이다..


◀ The image from DALL-E           갑자기 생각남

- 곰팽이 -

Saturday, October 12, 2024

 

In a mother’s womb were two babies.

One asked the other: “Do you believe in life after delivery?”

The other replied: “Why of course. There has to be something after delivery. Maybe we are here to prepare ourselves for what we will ask later.”

“Nonsense” said the first. “There is no life after delivery. What kind of life would that be?”

The second said, “I do not know, but there will be more light than here. Maybe we will walk with our legs and eat from our mouths. Maybe we will have other senses that we cannot now understand.”

The first replied, “that is absurd. Walking is impossible. And eating with our mouths? Ridiculous! The umbilical cord supplies nutrition and everything we need. But the umbilical cord is short. Life after delivery is to be logically excluded.”

The second insisted, “Well I think there is something and maybe it’s different than it is here. Maybe we will not need this physical cord anymore.”

The first replied, “Nonsense. And moreover, if there is life, then why has no one ever come back from there? Delivery is the end of life, and in the after-delivery there is nothing but darkness and silence and oblivion. It takes us nowhere.”

The second responded, “Well, I do not know, but certainly we will meet mother and she will take care of us.”

The first said, “Mother? You actually believe in mother? That’s laughable. If mother exists, then where is she now?”

The second said, “She is all around us. We are surrounded by her. We are of her. It is of her that we live. Without her this world would not and could not exist.”

The first said, “Well I do not see her, so it is only logical that she does not exist.”

The second replied, “Sometimes, when you’re in silence and you focus and you really listen, you can perceive her presence, and you can hear her loving voice calling down from above.”

 딸이 독립해서 혼자 산지 6개월 정도 지났다.

비행기에 개인 화물 접수처에서 일하는데 신입이라 많지 않는 급여로 생활한다.

그래서, 물어봐다 "혼자 사니 돈 많이 들어가지"

딸이 답하기길

" 들숨에 20만원 날숨에 30만원 나가"

숨만 쉬어도 돈이 들어 간다더니 표현이 그냥 뇌를 꽤 뚫는 느낌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