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소비자
기업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비용을 줄여왔다. 그리고 기업에서 가장 큰 비용 가운데 하나는 언제나 사람이었다.산업혁명 이후 기계는 사람의 육체노동을 대신했고, 컴퓨터는 반복적인 사무업무를 대신했다. 이제 AI와 로봇은 그보다 훨씬 넓은 영역에서 사람을 대신하기 시작하고 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다.
100명이 하던 일을 AI와 로봇을 이용해 10명이 할 수 있다면 인건비는 줄어들고 생산성은 높아진다.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경쟁기업이 그렇게 한다면 다른 기업 역시 살아남기 위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상한 역설이 존재한다.
기업이 없애고 있는 그 사람들이 바로 기업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던 소비자들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임금을 받는다. 그리고 그 돈으로 자동차를 사고, 집을 사고, 음식을 먹고, 여행을 하고, 옷을 사고, 각종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렇게 사용된 돈은 다시 기업의 매출이 된다.
그런데 기업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계속 줄이면 어떻게 될까?
생산은 늘어나는데 임금을 받는 사람은 줄어든다.
기업은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지만, 그것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의 구매력은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사람을 없앴는데, 결국 그 돈을 벌게 해줄 사람까지 없애는 것이다.
과거에도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우려는 항상 있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기계가 일자리를 없애면 사람들은 기계를 만드는 일을 하면 된다.”
오늘날에는 이렇게 바뀌었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면 AI와 로봇 관련 일을 하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실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기존의 일을 하던 사람 가운데 과연 몇 퍼센트가 AI 개발자나 로봇 엔지니어 같은 고도의 기술직으로 이동할 수 있을까?
그러한 직업은 누구나 교육만 받으면 할 수 있는 일일까?
나이와 교육수준, 능력의 차이를 넘어 수많은 사람이 단기간에 하이테크 직업으로 이동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설령 모두가 그런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많은 사람을 고용할 일자리가 존재하는가?
1,000명의 노동자를 대신하기 위해 만든 자동화 시스템을 관리하는 데 다시 1,000명이 필요하다면 애초에 자동화할 경제적 이유가 없다. 1,000명이 하던 일을 50명이나 100명이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은 자동화를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직업이 생긴다는 사실과 사라진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AI는 과거의 기계화와도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기계는 주로 사람의 육체노동을 대신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육체노동에서 사무직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는 사무직과 지식노동까지 직접 대체하기 시작했다.
회계, 번역, 디자인, 상담, 분석, 프로그래밍, 법률업무 등 과거에는 인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분야까지 자동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AI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직업으로 이동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일인지, 그리고 그런 직업이 수억 명을 수용할 만큼 존재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앞으로의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가 없어지는가’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소득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구에게 돌아가는가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소득분배 과정에 참여했다.
노동 → 임금 → 소비 → 기업의 매출 → 다시 고용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 순환구조를 통해 수많은 사람이 경제에 참여했다.
그러나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규모로 대신한다면 이 연결고리에서 ‘노동 → 임금’이라는 부분이 약해질 수 있다. AI와 로봇은 쉬지 않고 생산한다. 생산성은 높아지고 사회 전체가 만들어내는 부 역시 커질 수 있다.
문제는 그 부가 어디로 가느냐이다.
AI와 로봇이 만들어낸 생산성의 대부분이 그것을 소유한 기업과 자본의 이익으로 집중되고,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사람들의 몫이 계속 줄어든다면 생산능력은 넘쳐나면서도 그것을 구매할 사람들의 구매력은 부족해지는 기묘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소득분배 문제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 문제가 전혀 다른 차원으로 커질 수도 있다. 과거에는 분배가 불평등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일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다 같이 일해서 돈을 버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만 물을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의 노동 없이도 막대한 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에, 그 부를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나누어 갖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기본소득이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고, 사회배당이나 노동시간 단축, 새로운 형태의 자본소유와 소득분배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 옳은지는 앞으로 사회가 결정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는 피하기 어렵다.
기업은 이윤을 얻기 위해 존재하고, 이윤을 늘리기 위해 비용을 줄이려 한다. AI와 로봇은 인간의 노동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수단이다.
그래서 각각의 기업이 자신의 입장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더라도, 모든 기업이 동시에 같은 선택을 하면 사회 전체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사람을 줄인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줄어든다.
소득이 줄어들면 소비가 줄어든다.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의 상품을 살 사람이 줄어든다.
그리고 결국 기업이 벌어야 할 돈도 줄어든다.
어쩌면 이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가장 큰 자본주의의 역설인지도 모른다.
생산할 능력은 역사상 가장 풍부한데, 그것을 소비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부족한 사회.
AI 시대의 진짜 문제는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기계가 만들어낸 엄청난 부를 가지고도 인간이 계속 경제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어쩌면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더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