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또래의 대부분은 대도시 보다는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 더 많았을것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서울을 제외하면 다 시골이라고 칭한다. 시골에서 나서 자라 고등학교까지 머물렀다. 그런 시골 촌놈이 서울에 와서 학교를 다니면서 서울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학교 다닐때는 가장 친했고, 지금의 압구정의 로데오 거리에 집이 있는 친구였다.
하루는 그 친구가 자기집을 가자고 해서 따라 가게 되었는데, 정말로 드라마에서나 보는 차고가 있고 이층 양옥이면서 앞은 작지만 잔듸가 깔린 마당을 가지고 있는 집들의 동네로 데리고 갔다. 가는 길에 그 중 한집을 보면서 " 야 저런집에선 누가 사냐" 라고 하면서 친구에게 말을 던졌다..
헌데 웬걸 친구 녀석이 그집 차고로 쏙 들어가지 않는가?...머쓱해 하면서 따라 들어 갔는데 그 친구방이 차고 옆이였는데 침실에 오디오까지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냥 내 형편과는 좀 다르구나 라고만 생각했는데, 차고 밖 안집은 위 쪽에 별도로 있어서 다시 친구를 따라 갔는데 다른것보다는 개인연습용 미니 골프 연습장이 있었다. 친구 아버님이 사용하시는거 였다. 그것이 내 눈에는 그냥 단순한 연습장이 아니였다.
"아, 이렇게 살고 있구나" 라는 ...
빈부의 격차라는 생각이 들기 보다는 다르게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그 친구집에서의 받았던 충격은 머리에서 잘 떠나지 않았다..하지만, 세월이 약이였던가?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들어 가서야 다시 생각났지만, 직장이 바뀐 30은 즈음에 골프를 시작했다. 직장지하에 스포츠 센타가 있었고 나보다 나이가 한참 젊은 학생이 티칭프로로 있어서 쉬 배울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컷을때, 친구의 집에서 받았던 충격이 아이에게만은 완화를 시키자는 의미에서 아이들용 골프채를 사주고 가끔 인도어 연습장에 가서 아빠가 치는 모습도 보이고 또 가르켜서 쳐보도록 했다.
젊은날에 했던 스쿠버도 마찬가지였다. 키즈용 스킨장비를 사주고 같이 들어가 보고 느끼도록 했다. 물론 아이들이 살아 가면서 다른형태의 문화적 충격이 오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보단 이러한 충격들이 잦지 않기를 바라면서 시도해 본것들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